당신의 모든 순간(The Entire History of You)
스토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레인'이라는 작은 캡슐을 귀 밑에 심어서 엄지손가락 크기의 단말기를 조작하기만 하면 자신이 보고 들은 몇십 년이 넘는 지난 기억을 온전히 보존하고, 심지어는 생생하게 눈 앞에 재생할 수 있고 화면에 띄워 남들과 같이 볼 수도 있는 오버 테크놀로지가 존재하는 세계.[27] 인간의 기억은 본래 쓸모없는 정보로 가득 차있고 조작되기 쉽지만 그레인은 그런 인간적 사고를 뛰어넘어 객관적인 정보를 알려주게 된다. 그래서 남의 기억을 노린 변태들에 의한 상해절도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레인을 넣은 채 살아가고 있다.
취직을 위해 로펌의 면접[28]을 치르고 온 변호사 리암(토비 켑벨[29] 扮)은 예상보다 면접이 일찍 끝났기에 서둘러 그 날 밤 아내 피온(조디 휘태커[30] 扮)과 그녀의 친구들이 연 파티에 합류한다. 리암은 피온이 조나스라는 남자와 사이좋게 얘기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스물스물 아내에 대한 의심이 자라나 내내 조나스와 피온의 반응을 유심히 살핀다.
저녁식사동안 조나스는 천박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리암이 그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던 중 새로 합류한 여성에게 그레인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떤 중국의 백만장자 변태가 기억을 들여보기 위해 덮쳐 파내 갔는데, 상처를 입을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없이 지내 보니 좋더라는 그녀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듯한 분위기가 흐르고, 이를 환기시키기 위해 한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재생시키며 화제를 돌린다.
파티가 끝난 뒤 리암은 조나스를 집에 초대하지만, 자신은 초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눈치를 주는 피온 때문에 억지로 초대한 거라며 다툰 후 자신의 집에 도착한 조나스를 다시 되돌려 보낸다.[31] 그리고 집에 들어온 후 피온을 추궁한다. 결국 이에 못 이긴 아내는 예전에 조나스와 잠깐 사귀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 뒤, 이미 오래된 일이고 당신을 만나기도 전의 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어서는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아무런 일 아닌 걸로 결론나지 않았었냐고 따지고, 리암은 홧김에 "Sometimes, you are a bitch."라는 심한 말[32]을 하기까지 하지만, 리암이 이내 사과를 해 부부는 화해를 하게 되고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33]
하지만 리암의 의심과 집착은 계속 이어진다. 피온이 자는 사이 몰래 거실로 내려가 술을 마시던 리암은 밤을 새면서까지 어젯밤의 파티 장면을 돌려보았다. 다음 날 아침, 리암은 조나스의 웃기지도 않는 농담에 웃었다느니, 쟤를 보는 표정과 나를 보는 표정이 다르다느니 해가며 피온의 행동을 하나하나 추궁하고, 아내가 조나스와 대화하던 모습을 독순 분석하는 프로그램까지 이용한다. 심지어 막 퇴근하려던 베이비시터에게도 그 장면을 보여주며 '니가 보기엔 어때? 수상한 거 맞지?'라며 계속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피온이 와서 애써 말리지만 리암의 행동은 멈추지를 않는다.[34] 결국 피온은 화를 대폭 내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버린다.
술에 잔뜩 취한 리암은 무작정 조나스의 집으로 향한다. 거기서 행패를 부리다 필름이 끊겼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웬 나무에 차를 갖다 박은 상태였다. 하지만 끊긴 필름조차도 그레인에는 모조리 저장되어있었고, 돌려본 기억 속에서 자신이 조나스를 제압하고 깨진 병으로 위협해 조나스의 그레인에 저장된 아내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우게 협박하였다는 걸 알게 된다.[35][36] 그리고 기억을 다시 돌려보던 중 무언가를 목격한다.
집으로 돌아온 리암은 피온에게 대뜸 그 날 콘돔을 썼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앞서 조나스의 기억 데이터 화면을 눈으로 봤던 기억 중에서, 18개월 전 자신들의 부부 침실(바로 여기)에 아내가 누워있는 썸네일을 보여준다. 즉, 아내는 예전에 끝난 관계라고 했지만 불과 1년 반 전[37]에 조나스와 섹스를 했다는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피온은 당시에 리암이 비슷한 이유로 싸우고 집을 나갔을 때[38] 외롭고 술에 취한 나머지 조나스와 하룻밤을 잤다고 실토한다. 이에 리암은 '그 때 콘돔은 썼냐, 우리 아이가 맞냐'면서 그 날의 기억을 재생하라고 시키지만, 피온은 다 지웠버렸다고 버티더니 몰래 기억을 삭제하려하다가 리암에게 제지당한다. 결국 그 날의 피온의 기억 화면이 재생되고 신음 소리가 침실을 가득 채우자 리암은 참담한 표정을 짓는다.
시간이 지난 후 리암은 혼자서 텅 빈 집 안을 둘러보며 장소 장소마다 피온과 있었던 기억들을 재생해본다. 그리고 결국 괴로움 끝에 면도칼로 귀 아래 피부를 찢어 그레인을 강제로 꺼내버린다. 순간 아내의 기억들이 눈 앞에 교차하고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암전되고 엔딩 크레딧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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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에 대한 경각심과 동시에 생각할 거리를 전달하는 이 드라마의 매력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남자의 정도를 지나친 집착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후반부의 아내의 행동에도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레인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이처럼 선명하게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두 사람은 그냥 한 번 다투고서 화해 후 넘어갈 정도의 사건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작중 선명한 기억이 계속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증거가 되는 세상이기에 리암이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집착하게 만들었고, 결국 리암의 가정은 파탄 나고 만다. 또한 리암은 기억을 되짚으며 폭음을 한 나머지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 기억은 당장 찾아올지 모를 회사의 입사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며, 잊혀지지 않고 리암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다. 뛰어난 기술 발달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비판하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동시에 드라마는 리암과 피온의 아이가 결국 누구의 아이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39] 결국 피온의 외도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남편이 자신을 위해 사 준 그림이 걸린 방에서, 매일 밤 남편과 잠드는 침대에서 육체 관계를 맺은 것이다. 피온은 리암에게 자신의 비행을 숨겨왔고, 도저히 속여넘길 수 없는 증거를 들이밀기 전 까지 거짓말만을 반복했다. 그레인이 없었다면 리암은 끝까지, 혹은 다른 문제가 곪아 터져서 더욱 참담한 결말을 맞기 전까지[40] 진실을 몰랐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외도로 낳은 자식이었다면? 그런데도 그레인이 없는 세상이기에 리암이 아이를 평생 자신의 자식인 줄 알고 키워야 했다면?'과 같은 가정을 해 본다면 기술의 발달이 나쁘다고만 규정할 수 없는 것.
이 외에도 그레인의 장단점에 대한 묘사가 여러 군데에서 비춰진다. 사생활이 보호받지 못하고 지시대로 기억을 제공해야 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이나, 반대로 공항과 같이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도 사실이다. 생생한 기억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잊지 못하게 하는 저주일 수도 있지만, 남기고 싶은 소중한 추억을 보관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고 친밀한 인사를 나눌 수 있지만, 저장된 기억을 뒤져서야만 떠올릴 수 있는 얄팍한 인간관계에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집에 돌아온 피온이 아이의 기억을 돌려보는 것은 집에서 직접 보살피지 못한 아이의 하루를 궁금해 하는 부모의 사랑이기도 하지만, 직전까지 친절하게 대했던 베이비시터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일수도 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영화화를 위해 판권을 구매했다. #
사운드트랙 담당은 스튜어드 얼(Stuart Earl).
이전에 남긴 기록을 보고 진실을 찾아간다는 점에서는 분위기가 영화 서치와 꽤나 비슷하다.
후기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 안전한 사회를 가질 수 있지만 그로 이해 벌어지는 문제를 말하고 있다.
일단 그레인이 자신의 기억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억이 눈보다 해상도가 좋아보인다. 그 당시에도 잘 안 보일게 확대해도 문제없이 볼 수 있는데 뇌내 망상이 아닌 기술의 발전이라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설정으로 보인다.
일단 에피소드 초반부에서 별로 안친한 사람과 대화하기 전에 기억을 돌려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런 문화가 문제의 시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부분 그레인이 있을 때 기억을 돌려본 사람은 왜 저 사람은 잠깐 돌려서 확인을 안 하지? 이 간단한 것도 안 해? 날 무시하나? 이런 생각으로 돌리는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돌리는 게 자연스러워지자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팩트체크를 하는 행동이 많고 자연스럽게 이전의 실수를 꺼내면서 사람과 사람으로서 이해보다는 상대를 제어? 억압?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키 해석은 그레인이 없었다면 이런 의심들도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고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륜을 잡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해석이 의도로 보이지만 한쪽이 너무 쓰레기로 나와서 그런 해석보다는 다른 느낌이 받는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드래건은 수명이 길기에 기억으로 고통받는 묘사들이 나오고 망각이 오히려 축복이라는 구절들이 나오는데 그레인이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 해도 비슷하게 보인다. 자신이 찜찜했던 순간을 기억에서 삭제하기보단 돌려서 확인할 수 있기에 팩트체크를 통해 의심이 커지는 구조로 보인다. 모두가 자신의 기억을 볼 수 있는 건 좋은 것도 있으나 문제도 생기므로 소수만 볼 수 있거나 인공지능을 통해 위험 확인만 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 그들이 마음먹고 조작하면 막을 수 없기에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이런 사회라면 그레인 없이 사는 게 편해보인다. 아니면 그레인을 달아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다. 물론 이게 지금의 스마트폰처럼 없으면 살기 힘든 사회라 반강제일 수도 있지만 지금도 스마트폰을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많으니 가능하다고 본다.